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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0 꼬꼬무 : 입속의 혀- 유괴범과 꼭두각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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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의 인트로는 1년 동안 대한민국이 매달렸던 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1980년 서울의 겨울. 어느 한 여인이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몸이 늘 다쳐서 오기 때문이었는데, 그 남자는 강력반 형사였다. 그 남자는 어떤 사건을 맡았는데 그 사건의 수사 반장은 무려 두명이었다. 김정남, 이재무 반장, 강력과 폭력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두명이 붙은 큰 사건이었다. 당시 그 형사들은 엄청난 사건이었고, 그 사건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도 높았다고 했다.

전화벨, 비극의 시작

그 사건의 시작은 전화벨에서 시작되었다. 가정집에 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집 아들 우진(가명)이가그 때 까지 귀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건 낯선남자의 목소리였다.

“아들 찾고 싶으면 4천만원을 준비하시오”

수화기로 들리는 목소리는 30대정도의 남자로 추정이 되었다. 하지만 코를 막아서 변조가 되었던터라 찾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공개 수사를 하기보다 어린 아이의 안전을 위해 극비로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한 구석이 있었는데 유괴된 아이는 무려 중학교 1학년,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오후 3시 50분, 집을 나서서 4시 10분 수량서점에 도착했다. 서점을 4시 15분에 나서서 마포우체국으로 갔다. 하지만 우체국에서는 그 아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표수집이 취미라 직원들이 그 아이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체육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우진이가 나오지 않아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돌아갔다고 한게다였다.

유괴 과정에서 실랑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면식범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일단 우진이의 아버지와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을 조사했고 가족, 친척 등 속속들이 조사했다. 그리고 다시 올 범인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날 범인의 전화를 받았는데, 범인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첫날은 남자 목소리 였는데 둘째날은 여자의 목소리였던 것이었다. 공범이 있다는 것.

그 와중에 경찰은 전화를 추적하지만 할 말만 하고 딱 끊어버렸고, 전화도 공중전화에서 걸었기 때문에 추적은 실패한다. 그리고 다음 연락은 편지로 하게 된다. 그 안에는 약속시간과 장소가 나와있었다. 그리고 전달자는 아이의 누나.

1980.11.20. 아버지는 집에서 대기하고, 어머니는 누나에게 돈가방을 전달해 보낸다. 가족들은 아이를 볼 생각에 희망을 가졌고, 주위에는 변장한 형사들이 잠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가게전화로 누나에게 남산 야외음악당에 오라는 지시만 한채 전화는 끊겼지만, 형사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경찰은 아이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모두 용의자로 조사를 했는데, 도저히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납치 한달 째 가 되자 지문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범인이 보낸 편지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전자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총 200만명의 지문을 대조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 와중에 여자의 목소리로 전화가 왔는데, 12월 18일 시계탑으로 약속장소를 잡았고, 경찰은 약속이 바뀔 것 까지 계산해서 계획을 다 해뒀다. 그 날, 철저하게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범인들은 그 후에 연락을 끊어버린 상황.

비밀수사에서 공개수사로

1981년 3월, 어느 한 남자가 우진이의 집을 찾아오게 되는데, 다름 아닌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대통령. 이 사건으로 인해 비밀수사로 진행되었던 사건이 공개수사로 진행되었으며, 수사인원도 확대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였다. 국민들이 모두 우진이의 무사귀환을 바랐다. 전화로 수사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다.어머니는 범인에게 공개서신을 보내 아들에 대한 마음을 나타냈다.

하지만 단서를 하나도 찾지 못하고 6개월이 지나버렸다. 두 수사반장은 경찰옷을 벗을 각오로 사건 당일부터 다시 철저히 조사하기로 한다. 그 순간, 학교 밖에서 아이를 만나려고 한 체육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체육선생님의 이름은 주경형. 두 수사반장은 주경형을 다시 조사하기로 하지만 학교는 떨떠름 했다. 주경형은 체격도 좋고, 서울대 엘리트 출신에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선생님이었다. 다시 조사했지만 알리바이는 처음 조사한 것과 동일했다.

하지만, 새로운 증인이 등장했다. “그 날 출석체크를 하기 했는데, 출석체크만 하고 바로 나갔다” 라는 것이었다. 2시간의 공백이 생겼고, 그 시간에는 범행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것을 캐물으니 주경형은 자신이 거짓말을 했고 그 시간에 외도를 한 것이 드러났다. 경찰은 그 여자를 찾아서 알리바이를 물었고, 알리바이는 일치했지만 그 여자의 나이는 열일곱.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밝혀졌다. 그리고 주경형이 전근무지인 여중에 조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선생님이 자신을 여관에 데려간 내용이 나왔다. 그 일기장의 주인공은 그 선생님의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인데 그 학생과 외도를 한 것이었다. 심지어 주경형과 얽힌 학생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 소문을 여중생들의 장난으로 여기고 그냥 전근처리를 해버렸다. 심지어 일기장의 내용처럼 여관에 데려간 여학생이 스무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민이 있는 여학생에게 접근해서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불러내서 그렇게 범죄를 저질렀던 거다.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이용해서 말이다.

하지만, 저런 범죄를 저지른 것과는 달리 아이와의 연관성을 찾아야했다. 선생님의 내연녀, 그 여중생은 선생님(=주경형)이 범인이 아니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유괴날짜를 세뇌시키면서 주도면밀하게 알리바이를 만드려고 했던 것이었다. 두 수사반장은 주경형을 다시 조사하게 되자, 주경형은 유서를 썼고 학교에서도, 경찰에서도 수사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다.

최초의 거짓말탐지기 수사, 범인검거

나중에는 검사관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를 들여서 수사에 사용했는데, 이 사건이 최초로 거짓말 탐지기가 수사에 사용된 사건이다. 주경형은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게 되었다. 경찰은 그 날 아이가 새로 낀 장갑을 보여주고 찾는 검사를 했는데, 이것을 숨긴정보검사라고 한다. 이 검사에서 반응이 나오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검사에서 주경형은 유괴범일 가능성이 97.3%로, 매우 높았다. 형사들은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 1박 2일의 심문 끝에 주경형은 자백을 했고, 아이는 암매장 된 채로 시체로 발견되었다.

수사 결과, 아이는 납치 당일 혹은 그 다음날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화로 들려준 아이의 목소리도 미리 녹음한 것이었다. 왜 우진이는 납치당했던 것일까. 당시 주경형에게는 1800만원의 도박빚이 있었고 그 빚때문에 제자를 납치했고 자신과 내연관계에 있던 아이들을 범죄에 이용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 제자에게 자살을 지시했고, 한마디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면제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온 여중생이 있었는데, 이 여중생이 편지의 지문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우진이는 뒤늦은 장례식을 치렀다.

주경형은 현장검증을 하러 가면서 “출소하면 88올림픽은 볼 수 있겠죠?”라는 터무니 없는 질문을 하고 아이는 스스로 죽었다는 등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 선생님은 사형이 선고되었고, 8개월 뒤 사형이 집행되었다.

(반면, 공범인 여중생들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는데, 물론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들도 피해자다라는 사람과 범죄를 저질렀으니 죗값을 치러야 한다라는 의견이 나뉘었다. 교계에도 비난이 쏟아졌는데 여중생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순결교욱을 해야한다고…(뭐라고?!))

여담이지만, 주경형이 재직했던 중학교에서 몇년 뒤 유영철이 졸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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