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감정을 잘 읽는 편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숨겨진 의도도 나름 잘 캐치하는 편이다. (다만, 그걸 들어주느냐는 별개이긴 하지만 말이다) 뭐 그래서 좋은 점도 있긴 하지만, 피곤하기도 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난 남들보다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좋다 못해 넘쳐 흐르던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종종 ‘ 네 일이 아닌데, 네 일 처럼 받아들인다’ 라는 말을 들었고, 그것이 당연했던 나는 내 성향이 ‘유난함’이라고 여겨야 했다.
이 ‘유난함’이 재능이라고 일깨워준 책은 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이었다. 이 책에서는 남들보다 민감해서, 주위의 자극들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내용이 적혀있었고, 난 그 책을 보며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걸 알고 위로받았다.
그런 중에, 몇 개월 전, 어떤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경험을 했었다. 어떤 사람의 눈을 봤는데, 그 사람의 아픔이 느껴지고, 때로는 그 사람을 보고 있지 않았는데도, 근처에서 등 뒤로 감정 덩어리가 느껴지는 경험도 했다. 이 경험이 생소하기도 했고,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없는지 책을 찾기 시작했다. 직관력, HSP(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의 영어 약자), 등등을 조사하다가 HSP보다 상위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영어로는 Empath, 우리나라 언어로는 ‘초민감자’ 였다. 뭔가 해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책을 사서 그 안에 있는 엠패스 테스트를 해봤다.
20개 중에 17개. 난 완전한 초민감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렸을 때 부터 누가 끔찍하게 죽는 스릴러, 호러같은 영화는 질색팔색을 했고, 낙차가 있는 스릴있는 놀이기구(롤러코스터 등)은 눈감아야 겨우 탈 수 있었는데, 이게 외부의 자극에 민감해서 생기는 거였다니.
특히 놀라웠던 건 에너지 뱀파이어를 상대한 후 회복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소개팅에서 저런 경험을 했었다. 아는 사람에게서 남자를 소개받아 소개팅을 했었는데, 그 다음날 유독 피곤해서 혼났었다. (알고 보니, 성격에 꽤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이걸 제 3자에게서 들었는데 좀 소름 돋았었다)
초민감자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관계 초민감자' 였다. 파트너(또는 깊게 지내는 사람) 의 감정을 알아채고, 흡수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모든 사람의 에너지를 명확하게 느끼는 편은 아니다(그래도,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피곤하다). 하지만, 나와 깊게 관계한 사람들에게는 내 경계선을 허물고, 그 에너지와 감정을 마치 내 것마냥 받아들인다는 거다. (뭐, 그래서 내 사랑이 유독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HSP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고, 그것을 인정받았지만 엠패스는 과학적으로 설명과 증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분명히 엠패스의 능력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다른사람 보다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엠패스라는 것이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다(사실, 거짓말 같기도 하다). 사실은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인데, 책에서 좀 유난히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내 능력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능력을 적재적소에 쓰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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