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내가 사랑한 것들

#4. 학창시절

728x90
반응형

나는 이렇게 많은 친구를 두고 있진 않다..(하지만 한번씩 꿈꾸긴 하지)

내 인생에서 어려움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청소년기를 꼽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꽤 쿨한 편이고,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이 옳은 결정은 아니었다고 해도, 거기에 대해서 미련도 없고,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한들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살아낼것이라고 자신하는데, 유독 이 시절만큼은 그 때로 돌아가기도 싫고, 10년이 훌쩍 지난 일인데도 그 때의 아픔들이 내 안에 남아있다. (물론, 이것들이 내 인생에 강한 영향력을 주진 않지만, 살다보면 아픔의 흔적들이 느껴질 때도 있어서 씁쓸할 때가 있다)

 

난, 중학교 3개월 왕따, 고등학교 3년을 은따로 지냈다. 물론 중학교 3개월은 그냥 헤프닝으로 끝났고, 그 때의 기억들은 나에게 흉터를 남겨주지 않았다. 뭐, 어리기도 했고 짧은 기간이기도 했고. 그 때 받았던 오해들은 다 풀고 친하게 지냈으니까.

 

하지만, 고등학교 3년은 아예 결 자체가 달랐다. 이미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라, 기억이 왜곡되거나 온전치는 않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내가 입학하고 배정된 반에는 남자 홀수명, 여자 홀수명이 있었다. 그래서 남자 1명, 여자 1명은 짝이 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내가 남자애와 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게 왜 3년 은따의 시작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향적이고, 자기 표현이 적었던 나는 곧 반대 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 '모자란' 아이라고 낙인이 찍혔고, 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학교 3개월동안 왕따를 당한 나는, 그런게 싫었다. 그래서 그 무리의 한명에게 경고를 했었다. 뭐, 쫄았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본인은 안놀리겠다고 이야기했었던 기억. 그래도 그 무리들이 나를 은근히 따를 시키는건 변하지 않았다. 나도 뭐, 거기에 굳이 장단을 맞출 필요는 못느꼈지만, 괴로웠다. 그냥 12시간 넘게 학교에 있으면서 고독이 내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내 마음을 말할 사람도 없으니 그게 참 외롭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거기다가 그 상처가 생기는 중에 약은 커녕 소금을 뿌리는 일도 있었다. 자세히 이야기는 나중에 할테지만,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남자애 무리도 있었는데, (그 무리의 리더? 급인 애가 나를 좋아했다는........뇌피셜도 아니고, 실제로 제 3자에게서 그렇게 들었다) 그 무리의 남자애들이 나를 괴롭히는게, 내가 친구가 없다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아니, 친구도 없는데 그 남자애들이 나를 괴롭히는게 시너지를 일으켜서, 마음의 상처가 더 커졌다는게 정확하다. (그래서, 양복입은 남자를 다른 여자들보다 좀 더 무서워 하는 경향이 있다. 교복이 아무래도 양복하고 차림새가 비슷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지속적으로 무리의 관심이 되는게 괴로웠다. 좋은 일로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 때의 나는 튀고 싶지도 않았다. 반에서야 뭐 그렇다쳐도, 영어/수학으로 수준별 수업을 할 때는 3개 반의 아이들이 보는데, 그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싫었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는 대신,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 혼자라는 현실을 인지하고 싶지 않았달까, 그랬었던 것 같다. 

 

2학년, 3학년이 되면서 나에 대한 오해는 어느정도 사라졌지만, 아이들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변하진 않았다. 뭐, 그 때쯤 되서 나를 다시 끼워주기도 뭐했겠지. 교탁 앞 내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 앞에 카메라 슬쩍 올려놓고, 촬영해놓고. 물론 나도 눈치는 채고 있어서 물체로 가렸던 기억이 있다. 뭐, 그런식으로 나에 대한 은근한 따돌림은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뭐 그래도 1학년 때보단 버틸 만 했기도 했고, 솔직히 덕질하면서 어느정도는 해소하기도 했다. 학교성적이 엉망이긴 했어도, 수능성적이 내신보다 좋았던 (여학생치고는) 특이케이스였던 나는, 그래도 나름 괜찮은 학교, 내가 원하는 과에 갈 수 있었다.


 

2007년 2월, 졸업식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교를 하고, 그 뒤로는 한번도 그 학교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다 학교 다 몇번 씩은 학교에 가보고 했었는데, 고등학교가 워낙 외진 곳에 있기도 했지만, 다시 그 학교에 가게 되면 내 기억들이 하나씩 살아나며 나를 더 괴롭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출퇴근 길에 버스로 지나가곤 하지만, 그 학교에 갈 생각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실, 거의 등교가 아니라 등산에 가까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행히 대학생 때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내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나갔다. 졸업 후에는 남들보다 늦은 사회생활에, 이직에, 순탄치 않은 직장생활이 지속되고, 심지어 임금도 체불되어서 마음이 너무 힘든 나날을 보냈다. 엄마와 자취방을 처리하고, 금요기도회에 가는 도중에, 이야기가 흘러흘러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냈었다. 고등학생 때, 3년 은따당했는데 그 때 너무 힘들었다고. 졸업한지 10년이 넘은 딸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래도 그런 때가 있어서 그런지, 누군가가 무리에서 소외되는걸 좀 못견뎌하고, 어떻게든 내가 말을 걸고 해서라도 소외당한 사람들을 챙겨주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 때 그 경험으로 오히려 관계를 잘 할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달까, 뭐 무튼 그렇다. 

 

사람이 힘든 일을 겪고는 폭풍 성장한다고 하는게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아픔, 그런 외로움은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이다. 그 경험을 통해 배운건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말이다. 

 

 

728x90
반응형

' > 내가 사랑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시  (0) 2020.09.13
#2. 힘  (0) 2020.09.07
#1. 바다  (0) 20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