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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일상이야기

201221 : 고장난 수도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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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허전해서 썸네일용으로 넣어봄

요 며칠 예민해져 있었다. 타인의 의지로부터 시작해서 내 의지로 쳐내야 하는 일은, 어느 누구도 하기 싫은 일일 것이다. 타고난 통찰력으로, 이리저리 단서를 찾은 결과 전체그림은 그려졌다. 누가봐도 불합리한 상황이었다. 담당자들은 바빠서 신경을 못썼고, 부하직원인 내가 총대를 매야하는 상황이었다. 서러웠다. 그리고, 내 감정은 폭발했다. 주위에서 우째우째 수습해주고 나도 겨우 나 자신을 다잡고 일을 겨우 쳐냈다. 하지만, 그렇게 겨우 쳐내고 나니 아무 말 없던 담당자 중 한명(=내 직속상사)이 일의 결과를 가지고 나를 나무랐다. 뭐, 나무랐다는 표현이라기 보다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된다고, 이렇게 되지 않도록 대안을 제시하는게 내 역할이라는 말이었는데, 정작 그 담당은 본인이었고, 나는 실무자와 소통만 잘하면 되는거였다. 꼭지 도는 줄. 

 

도저히 꼭지가 돌아오지 않아서 소통을 시도했지만, 그 사람은 영혼 없는 사과와 변명 뿐이었다. 자기가 한 말 기억 잘 안나는 듯. 그리고, 깨달았다. 이 사람에게 그런걸 바라면 안되겠구나. 그냥, 나 혼자 쌍욕으로 푸는게 더 건설적이겠구나. 싶었다. 사람으로서도, 상사로서도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뭐, 오히려 잘됐구나 싶기도 했고.

 

그래도 감정이 풀리지 않아서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자신을 돌아보라'고. 꼭지는 돌아갔지만,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원래 예민했던 내 감정은 날카로워져 있었고,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찌르고 있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자, 그 때 그 일이 떠올랐다. 내 입장에선 억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누구한테도 이야기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그 감정을 대면하기에는 너무 아팠기에 운동으로 풀면서 견뎌야했었던 상황이었다. 관계는 우야든동 내가 먼저 다가가서 풀렸는데, 내가 억울해했던 문제는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았고, 그래서 내 감정도 풀리지 않았던거다. 

 

오늘 출근부터 시작해서 퇴근까지, 그 감정이 막 올라오는데 눈물이 막 주륵주륵 흘렀다. 그 생각만 하면 눈에 눈물이 고여서 일을 못할지경이었다. 퇴근버스에서는 고장난 수도꼭지 마냥 눈물이 막 주륵주륵 흘렀고, 내 감정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느꼈다. '정말, 그 때 내 생각보다 많이 아팠었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게 퇴근길을 눈물로 적시고 나서 집에 와서도 펑펑 울었다. 울면서 내 아픔의 깊이를 느끼는데 이게 밑도 끝도 없어서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인건, 그래도 날 흔들고 있는 이 감정을 내가 온전히 느껴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는거다. 

 

그렇게 울고 나서 주위에서도 괜찮냐고 물어보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많이 느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런 사랑을 줘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눈에 눈물이 가끔씩 고인다. 그래도, 이 감정을 최대한 느껴야할 것 같다. 그 때 충분히 아파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이라도 그 아픔을 감당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울면 우는데로 눈물흘리면서 내가 얼마나 아픈지 느껴야겠다. 아플 때는 울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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