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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소설

[단편소설] 17살의, 너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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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보자!"

 

 칼퇴 한 다음, 시내에서 대학교 친구를 만났다. 서로 삶의 애환들을 나누고 회사와 상사를 대차게 까고, 뭐가 그리 아쉬운지 막차시간이 거의 가까이 다가와서야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가 대학교 때 부터 애용하던 71번 버스는 우리집을 향해 조금씩 향하고 있다. 성남동, 학성공원과 효문사거리를 지났고, 효문사거리 쪽에 있는 고등학교의 수업이 파해서 그런지 고등학생의 유치하고도 시끄러운 수다를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들어줘야 했다. 물론 MP3로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난 귓바퀴밖으로 음악소리가 나가는거 내 성미에도 맞지 않고 피해준다고 생각해서 작게 틀어놓고 있었으니까. 그 소리가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들린다. 깔깔거리면서 남 뒷담이나 까거나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애들 흉보겠지 뭐. 그 나이 때 애들이 늘 그러니까.

 

 효문사거리, 남목, 녹수초등학교. 조금 있으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다다른다. 빌어먹을 기억의 소급과 함께 또래들하고는 달랐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외모에는 관심도 없었고, 유일하게 취미라면 책 읽기. 중 고등학생의 취미 라기엔 참 거리가 멀었다. 99년이 지나고 00년도가 되고, 난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내 또래들은 HOT, 신화, god 등등 아이돌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빠져들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언젠가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없다." 라고 말했다. 물론 좋아하는 가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처럼 외모가 멋있어서, 스타성이 있어서 좋아한 건 아니었고, 노래 가사가 좋고 그 자리에서 노력하는 그 모습이 좋아서 좋았던 거니까. 그러자 친구들의 반응이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왜?" 라는 간단한 반문과 함께 "왜, 더 멋진 가수가 나오기를 기대하는거야?" 라는 대답도 할 가치를 못느꼈던 질문을 받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 이유조차 말하지 못했던 내향적이었던 나는 생각하고 있던 또 다른 핑계를 댔다.

 

 "그들하고, 나하고 다른게 뭐야? 다 똑같은 사람이고 동등하잖아."

 

 결국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몇년씩 친하게 지낸다는 것도 기적이었듯이, 나는 지금 그 친구들 연락처는 커녕 관심조차 없다. 그들도 나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겠지. 상관없다. 그것도 익숙해졌으니까.

 

 드디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다다랐다. 검은색의 마이와 카키색의 교복바지와 치마가 나돌아다닌다. 내가 달고다녔던 초록색 명찰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07년도에 졸업하자마자 초록색 명찰을 대물림한 녀석들도 이제 수능쳤다고 없는거냐. 쳇. 시간 한번 빠르네. 

 

 2004년도 부터 졸업했던 2007년까지. 내가 마지막 학창생활을 보냈던 3년. 뭐 그리 후회는 없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질색을 하고 거부할거다. 후회를 하지 않는거랑, 좋아했던 거랑은 엄연히 다르니까. 대한민국에 사는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학교를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하지만, 난 그때 만큼은 기억하기 싫을 정도다.

 

 이래저래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집에 도착했다. 한시간만에 일어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지 않도록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잽싸게 내렸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춥기도 춥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그랬던 것 처럼 주위를 훑어보았다.

 

 더럽게 변한 것도 없구만.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놀이터에서 익숙한 교복이 보인다. 3년 전의 그날이 떠오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그 교복이냐. 하지만 뒷모습이 뭔가 익숙해서 자꾸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인거 같은데 말이지, 묶었지만 부시시한 머리하며 여자치고는 아담하진 않은 덩치. 그런데 고개를 숙인 채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웃는건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재밌는거지?

 

 들썩거리는 어깨를 뒤로 하고 몸을 구부려 얼굴을 보려했다. 그러자 갑자기 깜짝 놀라 고개를 드는 여자아이. 웃었던 사람치고는 눈가가 촉촉 했고 눈이 빨갛다. 그리고 더 놀란건-

 

 이 아이, 고등학생 때의 내 모습이다.

 

 

 ★

 

 

 여기는 롯데리아 안. 카페식으로 싹 바뀐 건물 내부를 보더니 얘는 엄청 신기해하는 표정이다. 쪽팔려, 제발 처음 와보는 듯이 두리번 두리번 거리지 말라고. 부끄럽잖아.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제-발. 저 성격 어디 안가구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결국 구석진 곳으로 앉았다. 뭐 앉았다고 해봤자 앞은 유리창이라서 훤히 보이지만. 어쨌거나 뭐라도 먹어야겠지? 아마 내 기억으로는 저 때가 한창 배고플 시간이니까. 

 

 "뭐 먹을래?"

 "음……."

 

 거참. 예나 지금이나 메뉴하나 고르는거 힘드네. 길고 긴 10분의 시간 끝에 결국 새우버거와 레모네이드. 그거 두 개 고르려고 그런 고민을 하냐 이 자식아. 아, 나한테 욕하니 뭔가 이상하긴 하다. 새우버거와 레모네이드라. 그나저나 그 때나 지금이나 식성은 하나도 변한게 없구나. 얼른 새우버거와 레모네이드를 시키고 나서 다시 앉았다. 아직 같은 얼굴에 다른 모습인 자신이 어색했는지 말은 없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뭔가를 만지작거린다. 서로 어색한건가. 낯가림은 여전하구만.

 

 눈치를 슥- 보고는 새우버거를 우걱우걱 먹기 시작한다. 배가 어지간히 고팠던 것 같다. 그래도 어색한건 똑같았는지 말도 없이 먹는다. 그래, 알겠는데 나도 어색한건 마찬가지라고! 뭐, 좀 다른게 있다면 난 조금 여유가 있다고 할까. 그래봤자 한입 차이지만. 

 

 "어때, 이제 기분은 조금 나아졌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눈물이 조금 남아있지만 그래도 감정은 한결 나아진 것 같다. 뭐 똑같이 슬퍼도 배고프면 좀 더 서러운게 있어서 한번 울거 두번 울게 되니까.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왜 울었어? 라고 묻기도 힘들다. 사실, 내가 그 말을 하면 내가 막 울거 같거든. 

 

 이 세상 누구보다, 녀석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뭐 때문에 그랬는지, 말할 수 있겠어?"

 

 내 말에 조금 망설이더니, 녀석은 찬찬히 입을 뗐다. 남들 앞에 나서지도 않고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공상하기를 좋아했던 소녀는 남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때로는 감정적이고, 비약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때도 있었다. 때로는 감정이 조금 격해져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잘 달래니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기도 했다. 이 맘때 나도 저랬었나. 난 울기만 했던 것 같은데. 뭐, 저렇게 내 감정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으니 그런 것도 같다. 그냥 참고 있던 감정이 격해져서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울음이 자연스럽게 터지고, 그렇게 속앓이를 반복했었는데. 뭐, 지금은 그렇게 곪기 전에 어떻게든 풀고 다니긴 하지만. 

 

 10대들에게 따돌림 당한다는건, 사실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다. 그 세계가 곧 자신의 세계고, 그 무리가 없다는 건 자신을 지탱해 줄 세계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생 때에 따돌림 받는건, 자신이 어딘가에 머무를 곳 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은 신세가 된다는 의미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난 마음 둘 곳 없이 떠도는 신세였다. 떠도는 동안에 듣는 노래가 나를 받쳐주는 유일한 세계였으니까. 

 

 녀석은 자신의 외로움을 이야기 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진 몰라도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이야기 하지는 못했지만, 그게 자신에게 괴롭고 힘들다는 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가사에라도 위로 받으려고 노래를 들었지.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을 위로하며 그렇게 지냈었지. 그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마주쳤지.

 

 그래서 더 외로웠을거야. 그렇지?

 

 "그래도 노래들으면서, 애니 보면서 어떻게든 살고 있어요. 그게 유일한 낙이니까요. 그리고 재밌기도 해요. 그리고 제이팝은 케이팝과 달리 노래컨셉도 다양해서 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도 많고, 애니 보면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도 느끼게 돼요. 친구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인간을 이해하게 되는거 같아요. 다만..."

 

 지금이 너무 괴로운거지. 삶을 한발짝, 한발짝 살아내고 있는데 그 한발짝이 너무 괴로운거지. 이 방향이 맞다, 그르다 라는 생각을 가질 여유도 없었으니까. 한창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내고 체험해야 할 시기에 이런 환경에 처했으니 당연한거지. 그만큼 극한 상황인데.

 

 "진짜 외롭거든요. 대부분의 반 애들이 저를 이해 못하고, 심지어는 은근 슬쩍 놀릴 때도 있어요. 그걸 애들은 저 모르게 한다고 생각하는거 같은데, 사실 다 알아요. 그래서 더 괴로워요. 오늘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제 자리가 맨 앞인데 그 앞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저를 찍더라고요. 그래도 그런건 빨리 눈치채서 그 앞에 재빨리 손수건을 뒀죠."

 "미친년들. 사이코패슨가. 그런짓을 도대체 왜 하는거야. 자기들이 그런 일 당하면 퍽이나 좋겠다. 너도 그럴 일이 있으면 화를 내란 말이야."

 

 내가 화를 대신 내주자, 그 녀석은 우물쭈물 했다. 그리고는,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를 토닥거렸다. 

 

 "외로움의 바다에서 길을 잃은 채로 버려져 있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아이들은 모를거야."

 

  그렇겠지. 나를 그렇게 놀린 아이들 중에서는 심리상담 쪽으로 간다고 대학원 준비하는 양심도 없는 인간도 있었으니까. 나를 괴롭힌건 이미 머릿속에 없겠지.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상황에 결코 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녀석의 무릎은 이미 눈물로 흠뻑 적셔져 있었다. 어깨도 조금 더 격하게 떨렸다.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도 네 인생의 파도는 더 격하게 요동칠거야. 그럴 때 마다 생각해. 인생이란건, 모두 의미가 있다고. 지금의 너는 너무나 연약해서 쓰러질 것 같이 보이지만, 나중에는 몇 안되는 친구들, 후배들, 때로는 선배도 너한테 와서 위로를 받을거야. 강한 마음을 가진걸 알고 있거든."

 

 그리고, 지금도 넌 충분히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말을 마치고 나서, 녀석을 살짝 안아주었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처음 이야기했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는 없을테니까.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안았던 온기가, 나와 닮은 녀석의 형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는 내 울음도 어느정도는 진정되었다. 

 

 그리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강한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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