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내가 사랑한 것들

#3. 시

728x90
반응형

그냥 글만 넣기 그래서... 썸네일을 한번 넣어보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나에게 시라고 하면 언어영역 1등급을 끝내 받지 못한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유난히 공부를 하지 않았었는데(그 이유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 할 예정이다), 그 중에서 그나마 점수가 제일 잘 나온게 언어영역이었다.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고, 궁금한 텍스트는 꼭 한번 읽고 지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 탓에, 책도 빨리 읽는 편이었고, 이해도도 평균치보다 높았다. 다만, 점수를 올리기 전에는 문제 푸는 요령이 없었는데, 무식하게 문제를 많이 푸는 경험으로 요령을 터득했고, 언어영역이 두 등급이나 상승했다(사실, 비문학 쪽이 약했었는데,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오히려 문학 쪽보다 점수가 더 많이 나오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어느 정도로 요령이 생겼냐면, 긴 지문을 한번에 읽고 네 문제를 푸는 신공을 펼칠 정도. 이 기세를 몰아 1등급, 아니 2등급이라도 받아보려고 부던히 노력했었는데, 항상 '시'가 문제였다. 문제에서 요구하는 의미(답)를 찍어야 하는데, 나 자신이 정답에 비슷하다고 하는 답을 찍으니 틀릴 수 밖에. 그래서 시는 나에게 늘 애증의 대상이었다(뭐, 그렇다고 소설 쪽도 잘한건 아니긴 했지만). 

 

책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했던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시를 쓰는 학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름은 '창작'. 처음에는 시를 쓴다는 걸 몰라서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첫 시를 꾸역꾸역 쓰고 나서 대학교 축제 때 학과에 출품했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학과 공부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성격도 많이 달랐다. 그렇게, 20대의 짧은 방황이 시작되었다.

 

나는 왜 이 곳에 들어왔을까. 분명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을거 같은데 그 의미를 나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었다. 그렇게 나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심지어 학회를 나가려고까지 했었다.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아니 의미가 없는것 같아서.

 

어느날, 학술부장 선배가 나를 불러서, 나에게 이야기 했다. 평소에 독설을 잘해서 무서워 하는 선배였는데, 의외로 나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해줬다. 그렇게 힘들면 학회 나가도 된다고. 평소 같으면 학회 나간단 말을 꺼내면 무섭게 독설을 날리고, 상대방이 나가려는 이유와 의도까지 파악해서 촌철살인으로 까버린 선배였는데, 의외였다. 그 선배의 말에 '단지 싫어서' 나간다는 감정이 아니라, 나가야 하는 의미를 찾고 나가고 싶었다. 

 

시를 써보고 싶었다. 심연으로 가라앉는 나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시로 표현하고 싶었다.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지만, 어떻게든 써보기로 했다. 다른 학회원이 쓴 시를 나 나름대로 느껴보고 분석하기도 했지만, 제일 도움이 되었던 것은 시를 쓰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내향적이었고, 감정적이었던 나는 거기서 내 표현을 강하게 하지 않았지만 토론이 끝나고 시를 쓴 사람이 자신의 의도를 이야기하고 토론에 대해 감상평을 남기는 것을 보며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피력하진 않아도 내가 궁금한 것은 물어볼 정도로 입도 꽤 트였다.

 

제일 중요했던 것은 왕복 2시간이 되는 버스 안에서, 난 내 감정을 정의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렇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작업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점점 내면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때로는 그 무기력감에 허우적대곤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기력감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원동력으로 내 느낌을 시로 풀어갈 수 있었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뒤풀이 자리에서 그 선배와 따로 이야기 할 시간이 있었다(그 때가 내가 졸업하기 전 마지막 독대였던 것 같다). 그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 나에게 이 한마디를 했다. "네가 '창작'에 제일 가깝다." 라고. 그 말은, 이제 시 좀 쓰기 시작하는 20대 중반인 나에게도 묵직한 의미였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에게 강한 의미를 가질 정도로 말이다. 

 

지금은 시를 쓴지 시간이 꽤 지났다. 거의 절필 상태이지만, 그 때 쓴 시를 가끔 보면 그 때 당시 내 내면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는 것 같다. 당시의 감정도 느껴지지만 어떻게든 표현해서 풀어내려고 발버둥쳤던 기억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적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그 때가 있어서 내 감정을 돌볼 수 있고, 부족하고 모자라고 덜떨어진 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728x90
반응형

' > 내가 사랑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학창시절  (0) 2021.01.25
#2. 힘  (0) 2020.09.07
#1. 바다  (0) 20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