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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내가 사랑한 것들

#2.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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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지나면서 내 정체성을 찾아가던 시기에 나는 늘 '힘'을 원했었다. 내가 여린 마음을 가졌다는 걸 슬슬 깨달아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처한 상황들이 내게 유난히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중고등학교 시절을 외로움으로 보냈었다.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었다는 외로움은 나에겐 쥐약이었다. 단순히 힘든 것이 아니라 '홀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괴롭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힘듦을 이겨내기 위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었다. 

사실 지금도 그 흐름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관계가 소중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소중한 나에게 업무 중심이고 일 중심적인 한국 문화는 여전히 나에게 힘든 환경이다. 그래서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함을, 난 또 원했다. 내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 벽을 세우고, 남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해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늘 존재했지만(그래서 내 인생에서 차단시킨 사람도 몇 있다. 물론 일단 기본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게 끝없이 노력한 끝에 힘든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날 힘들게 하는 상황은 늘 존재했다. 남을 못믿는 사장, 돈을 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장,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상받기 위해서 부하직원을 가스라이팅* 한 상사, 그리고 그 상황을 알면서도 방관하던 사장까지. 

 

내가 원하던 '힘'은 내가 힘든 상황 속에서 헤쳐나가는 '힘'이었지만, 나에게 그 강함은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익히더라도 내게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온 강함, 즉 '힘'은 내가 원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위에 언급한 사장과 상사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난 그 상황을 힘들어했지만, 휘둘리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그 상황을 이겨내진 못했어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는 저항할 수 있는 힘과 마음이 있었다. 특히 가스라이팅을 한창 당하고 있을 때, 나와 같이 들어온 동기는 사회생활이 처음이어서 마음의 상처를 꽤 많이 받았었는데 나는 이 상황이 힘들긴 하지만, 상처가 되지는 않았었다. 그 때 한창 들었던 말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 '그 전에 왔던 알바생들은 일 잘했는데 왜 너희들은 못하나' 등 이런 말이었는데, 난 그 당시에 지시한 대로 했는데 왜 우리는 욕을 먹는지 이해가 안됐었다. 몇달 뒤, 그게 자존감 낮은 실장이(일도 못하지만 안하기도 했음) 사장한테 만날 깨져서 우리에게 하는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해가 되었지만(그 후에, 상처를 감당 못한 동기가 나갔고 나는 한달 뒤에 실장하고 싸워서 잘렸다). 그 후에도 그 회사와 임금 문제로 노동청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사태를 겪었지만, 물론 힘들었었지만, 나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장이 근로감독관한테도 구질구질하게 이상한 변명까지 다 해댔는데, 근로감독관이 팩트로 때려버림. 속이 다 시원했음). 

 

유약한 나 자신, 유난히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난 힘을 원했지만, 원하는 힘을 얻진 못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와 어울리는 힘을 받은 것은 매우 감사하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와, 힘들어 하는 마음을 가진 이를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 그리고 제일 자랑스러운 나의 힘은, '부당한 상황 속에서 그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그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난 내게 주어진 '힘'을 사랑하고, 잘 사용할 것이다.


*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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